1700년 한국불교의 정통법맥을 이어온 韓國佛敎 太古宗
<부처님의 탄생> 부처님은 어머니인 마하마야 왕비로부터 태어났습니다. 그 당시 인도에서는 출가한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는 친정으로 가서 낳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 풍습에 따라 마야부인은 친정인 코올리국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라는 아름다운 꽃동산에 이르렀을 때 싯다르타 태자를 출산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탄생하신 부처님은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한손으로 하늘을 다른 한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모든 세상이 다 고통 속에 잠겨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라는 뜻으로써 이것은 결코 인간 석가의 특수성을 내세우기 위한 것은 아니라 모든 생명들이 부처의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스스로 그것을 실증해 보임으로서 모든 생명들에게 불성이 있다는 보편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왕은 이름난 점성가를 불러 태자의 장래를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태자의 얼굴을 보고 난 사람마다 놀라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태자는 뛰어난 위인의 상을 갖추고 있습니다. 왕위에 오르면 무력을 쓰지 않고 온 세상을 다스리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고, 출가하여 수행하면 반드시 부처님이 되어 모든 중생을 구제해 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과 신하들은 한결같이 기뻐하였습니다. 어느 날 아시타라는 선인(仙人)이 카필라성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는 히말라야 깊숙한 곳에서 세상과 인연을 끊고 수도에만 전념하고 있었는데, 천신들이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했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태자가 카필라의 왕궁에 태어난 것을 천안(天眼)으로 보게 된 선인은 태자의 얼굴을 보려고 왕궁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아시타선인은 태자를 팔에 안고 그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한참 동안 말없이 태자의 얼굴만을 들여다보던 선인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왕을 비롯하여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왕은 선인에게 물었습니다. “태자를 본 사람마다 크게 기뻐하였는데, 선인은 왜 말 한마디 없이 울기만 하시오? 어디 그 까닭을 속시원히 말해 보시오.” 그러자 선인은 입을 열었습니다. “대왕님, 염려하실 일은 아닙니다. 태자는 장차 모든 중생을 구제할 부처님이 되실 분입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드문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너무도 늙었습니다. 태자가 도를 이루어 부처님이 되실 그때까지 살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슬퍼서 눈물이 저절로 나온 것입니다.” 싯다르타 태자가 전륜성왕보다 훨씬 뛰어난 상을 가졌다는 아시타선인의 말을 듣고 왕과 신하들은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위를 이어받아 나라를 다스리지 않고 출가하여 부처님이 되리라는 말에는 어쩐지 섭섭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웃나라인 코살라의 침략을 늘 두려워하던 카필라에 사는 사캬족들은 이상적인 전륜성왕이 출현하여 코살라뿐 아니라 온 세상을 평화롭게 다스려 줄 것을 고대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태어난 왕자가 나라를 다스릴 인물이 아니라, 출가하여 종교적인 대성자가 되리라는 예언이었습니다. |
출가의여정 태자의 나이가 13세가 되던 어느 봄날, 당시 농업국가였던 카필라국은 해마다 봄이 되어 농사철이 돌아오면 농경제를 성대하게 거행하곤 하였는데 그 날은 국왕이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밭으로 나가 몸소 농사일의 시범을 보이곤 하였습니다. 태자도 그 날의 국가적인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태자는 거기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즉 농부의 매서운 채찍에 못 견뎌 입에 거품을 머금은 채 힘들게 쟁기를 끄는 소들의 모습이나, 땅 속에 파묻혀 동면하던 벌레들이 쟁기 끝에 찍혀 나와 꿈틀거리는 모습들이 태자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벌레들이 햇빛아래 하얀 몸뚱이를 꿈틀대며 몸부림을 치면 작은 새들이 날아들어 그것을 쪼아 물고 그 새들은 다시 자기보다 더 큰 사나운 매에게 채여 잡혀먹는 실로 무섭고도 비참한 광경이었습니다. 그러한 광경은 어린 태자의 마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마침내 고민으로 변하였습니다. 홀로 자리에서 빠져나온 태자는 그곳에서 약간 떨어진 숲속으로 걸어가 나무 그늘에 앉아서 이런 생각에 잠겼다. “이토록 비참한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을 없앨 수는 없을까?”........ 세월이 흘러 어느새 태자의 나이도 태자비를 맞이할 나이가 되었고 정반왕은 신하들을 모아 의논한 끝에 집장대신(執杖大臣)인 마하나만의 딸로서 용모가 단정하고 지혜로우며 어질고 예의바른 야소다라를 태자비로 맞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2. 사문유관 어느 날 정반왕은 태자에게 성 밖을 구경토록 하였습니다. 마부와 함께 동문을 거쳐 외출했을 때, 태자는 허리가 굽고, 막대기에 의지하면서 걸을 때마다 비틀거리는 백발의 노인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 태자에게 마부는, 그는 늙었으며 모든 사람은 오래 살면 노인이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또 남문을 거쳐 다시 외출했을 때 심한 병으로 쓰러져서 고통스러워하는 병자를 보았으며, 마부로부터 이는 병든 사람이며 모든 사람들은 병들기 쉽다는 설명을 듣게 됩니다. 서문으로 나섰을 때는 장례식의 행렬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태자는 놀라서 “저것이 무엇인가?” 하고 마부에게 묻자 마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죽은 사람입니다. 넉(魂)이 육체에서 떠나 생명의 움직임이 없어진 것입니다. 부모, 형제, 처자, 그 밖의 모든 사람들과도 영원히 다시 만날 수도 없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이같이 매우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생명을 가진 모든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북문을 거쳐 나섰을 때는 한 사문(沙門)이 조용히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태자는 이 사람이 출가자인 것을 알고 마차에서 내려 출가함에 어떤 이익이 있는지를 예를 갖추어 물었습니다. 출가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일찍이 생, 노, 병, 사에 관한 것을 모두 격어보고 모든 것이 무상(無常)함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조용한 곳에서 수행을 쌓아 이 고뇌에서 초월하도록 노력하여 왔습니다. 제가 수행하는 것은 밝고 성스러운 것이며 바른 법을 실천하고 대자비를 일으키고 사람들에게 평안함을 주고 마음이나 행동에 조화가 잡혀 중생을 호념하고 세간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영구히 해탈하는 것입니다.이것이 출가의 법입니다.” 이 말을 들은 태자는 “이 길이야 말로 내가 구하고 있었던 길이다.” 라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궁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3. 출가 어느 날 태자가 넓은 궁성을 거닐며 출가수행자의 생각에 빠져있을 때 궁녀가 달려와 태자비가 아들을 출산하였음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태자는 기뻐하는 대신 “아 장애로구나.”라며 나직히 중얼거렸습니다. 부모와 부인의 사랑도 차마 뿌리치기 어려운 고통인데 이제 또 아들까지 가지게 되었으니 그 정을 끊는 어려움을 혼자 고백한 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장애’라는 뜻에서 ‘라훌라(Rahula)’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태자는 모든 사람이 잠든 어느 날 밤 출가를 결행하였습니다. 그때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 라훌라를 바라보곤 결연히 다짐하였습니다.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고향땅을 밟지 않으리라.” 태자는 칠흑 같은 어둠속의 험준한 카필라 성벽을 넘었습니다. 그 성벽은 물리적인 벽이기 보다는 넘어서야 할 번뇌의 장벽, 끊어야 할 무명(無明)의 상징이었습니다. 마부 찬타카가 눈물을 흘리며 태자의 앞길을 가로막고 다시 생각하기를 청하였으나 태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친타카여 그대는 돌아가서 국왕과 백성들에게 전하라. 나는 위대한 깨달음을 얻는 날 다시 고향땅을 밟으리라.” 이때 태자의 나이29세였습니다. 훗날 진리를 깨달은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출가한 것은 병듦이 없고 늙음이 없고 죽음이 없고 근심 걱정 번뇌가 없고 더러움이 없는 가장 안온한 행복의 삶을 얻기 위해서였다.”[중아함경] 이처럼 태자는 일찍부터 늙고 병들고 죽는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고, 그 필연적인 인생의 괴로움을 슬퍼하였으며, 불완전한 인간 세상의 모습을 괴로워했습니다. 그 끝에 마침내 그러한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왕궁을 버리고 출가를 단행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의 길을 찾아 세속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던져 버린, 참으로 '위대한 버림'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
고행과깨달음 그들을 떠난 싯다르타는 다시 브라흐만(Brahman, 범천)과 해와 달과 불을 섬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여기서도 싯다르타는 역시 자신이 닦을 만한 수행이 아니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이 이외에도 많은 스승을 찾아다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바라문 여성 싸끼(Saki)와 바라문 여성 빠드마(Padma)의 은신처에 초대를 받았으며, 바라문 라이와따(Raivata) 성인과 뜨리만디까(Trimandika)의 아들 라자까(Rajaka)로부터 환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싯다르타의 구도 편력은 계속되었습니다. 까삘라왓투(Kapilavatthu)에서 동남쪽으로 약1,000리 거리에 위치한 베살리(Vesali,비사리성)에서는 알라라 깔라마(Alara Kalama,)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싯다르타가 배운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관(觀)하는 선정(禪定)’ 즉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이에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길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 당시 큰 나라였던 마가다(Magadha)국의 수도 라자가하(Rajagaha, 왕사성)에 도착했습니다. 신흥의 도시 라자가하는 당시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답게 수많은 사문들과 사상가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싯다르타는 그곳에서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amaputta)라는 스승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웃다까 라마뿟다는 ‘상념(想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관(觀)하는 선정(禪定)’ 즉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이상으로 삼고 있었는데, 싯다르타는 여기에도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비상비비상처정’은 ‘무소유처정’보다 더욱 미묘한 선정의 경지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완전한 생사의 고통에서 해탈할 수 없다고 생각한 싯다르타는 또다시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베살리에서 헤어진 알라라 깔라마와 함께 웃다까 라마뿟따는 당시 가장 명망 높은 수행자들이었습니다. 선정(禪定), 즉 정신통일에 의해서 정신적 작용이 완전히 정지되어 고요한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해탈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 이들의 수행 목적이었습니다. 선정(禪定)주의자 또는 수정(修定)주의자라고 불리는 이들의 지도 아래, 싯다르타는 그들이 해탈의 경지라고 인정하는 최고 단계에까지 도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모든 괴로움이 없는 완전한 경지는 아니었습니다. 싯다르타는 전통적인 수행자들로부터는 더 이상 기대할 바가 없음을 깨닫고, 다시 라자가하에서 남쪽으로 80㎞가량 떨어진 우루벨라(Uruvela)의 세나(Sena) 마을에 있는 네란자라(Neranjara) 강 근처의 숲속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고행림(苦行林)으로 불리던 이곳은 현재의 부다가야(Bodhgaya) 동쪽이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고행수행을 겪은 싯다르타의 몸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서 등과 배가 맞붙고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는 비참한 몰골이었습니다. 이때 싯다르타는 고행으로써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음을 알고 지나치게 지쳐버린 육체를 회복하기 위해서 우루벨라의 네란자나강으로 내려가 맑은 물에 몸을 씻고 그때 마침 강가에서 우유를 짜고 있던 우루벨라의 촌장의 딸에게서 한 그릇의 우유죽를 받아 마셨습니다. 그리고 붓다가야의 우루벨라 마을 네란자라 강가의 보리수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내 만일 무상대도를 성취하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라는 굳은 결의를 하고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한 최후의 정려(靜慮)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마왕 파순의 방해를 물리치고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 즉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정각:無上正得正覺)”를 이루었습니다. 이 때가 태자의 나이 35세가 되는 해 12월 8일 이었습니다. |
초전법륜과 교화활동 "비구들아, 두 가지 극단이 있으니 출가자는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하나는 여러 가지 애욕에 빠져 그것을 즐기는 것이니, 그것은 열등하고 세속적이고 범부의 짓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 되는 바가 없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니, 그것도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 되는 바가 없다. 비구들아, 여래(如來)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원만히 잘 깨달았다. 중도는 눈을 뜨게 하고 앎을 일으킨다. 그리고 고요함과 수승(殊勝)한 앎과 바른 깨달음과 열반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카필라성을 뛰어넘어 수행을 시작하고, 고행을 거듭하기 6년. 붓다가야 보리수 나무아래의 금강보좌에서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 그 부처님이 사자후를 토한 것이었습니다. 다섯 비구를 상대로 시작된 부처님의 첫 설법은 흐르는 물처럼 거침이 없었습니다. 부처님은 '중도'의 가르침에 이어 '팔정도'와 ‘사성제’의 가르침을 설하였습니다. 가르침을 들은 교진여가 다섯 수행자 가운데 가장 먼저 가르침을 이해했고 이어 다른 수행자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자신도 모르게 "아! 참으로 교진여는 깨달았구나. 아! 참으로 교진여는 깨달았구나"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녹야원의 유명한 초전법륜입니다. 다섯 수행자는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몇일 뒤 ‘야사’라는 청년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다가와 법문을 들었습니다. 야사와 그의 친구들은 법문을 듣는 순간 마음이 열려 번뇌가 완전히 사라진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아들 야사를 찾아온 부모는 부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듣고 최초의 재가신자가 되었습니다. 이로서 법을 설하시는 부처님(彿)과 진리의 가르침(法) 그리고 그 진리를 수행하는 제자들(僧)로 비로소 불교의 삼보가 갖추어지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출가신자와 재가신자가 모두 갖추어져 수행공동체인 승가가 최초로 이루어 졌습니다. 부처님은 아라한의 지위에 오른 제자들을 모아놓고 마침내 ‘전도선언’을 하였습니다. “비구들이여,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전도를 떠나되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진리)를 설하라. 사람 중에는 마음의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들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니, 비구들이여 나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하여 우르벨라로 가리라.”(잡아함경) 인도의 북쪽 땅 녹야원에서 시작한 진리의 수레바퀴는 세상을 향해 구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북쪽으로는 카리라와스뚜, 남쪽으로는 보드가야, 동쪽으로는 앙가국의 참빠, 서쪽으로는 코삼비에 이르는 갠지스강 중류에 이르는 동서550Km, 남북350Km에 해당하는 지역이었습니다. |
부처님의열반 부처님께서는 지친 몸을 이끌고 카쿠쯔타(Kakutstha)의 강둑에 이르러 그 곳에서 목을 축이고 목욕을 하신 후 쿠시나가라(Kushinagara)에 닿으셨습니다. 사십여년을 곁에서 모신 아난에게 사라(Sara)나무 밑에 침상을 준비하라고 이르시고 부처님께서는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얼굴은 서쪽을 향하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고요히 누우셨습니다. 그리고 아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아난다여! 쿠시나가라의 말라스(Mallas)사람들에게 이렇게 전하라 오늘밤 자정 무렵 여래는 열반에 들리라고, 아난다여, 나는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었구나, 나의 여정은 이제 막을 내리려 하노라. 나는 이제 팔십세가 되었구나. 비유컨대, 낡은 수레가 움직일 수 없음과 같을지니라. 육신이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 만큼, 늙고 병들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내가 이미 가르치지 않았던가, 모든 형상 있는 것들은 다 사라져 없어지리라고. 그러나 여래는 육신이 아닌 깨달음의 지혜이니라. 내가 가르친 진리는 언제나 너희들과 함께 하리라." 아난다는 이 슬픈 소식을 말라스의 사람에게 전하고, 다시 부처님께 그 삶을 연장시킬 수 없겠느냐고 간청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윽한 미소로 제자들을 달래시고, 슬픔에 잠겨 사라나무 곁에 운집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펴고자 하였습니다. 이때 쿠시나가라의 늙은 수행자 수바드라가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평소의 의문을 풀어야겠다고 허둥지둥 달려왔습니다. 아난은 부처님께서 지금 매우 피곤하시고 병을 앓고 계시니 번거롭게 해서는 아니 된다고 그의 청을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아난에게 수바드라를 가까이 오도록 이르시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진리를 알고자 찾아온 사람을 막지 말아라. 내 설법을 듣고자 온 것이다." 부처님은 수바드라를 위해 설법을 들려 주셨습니다. 수바드라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실 시간이 가까워지자 무수히 모여든 제자를 돌아보시면서 마지막 가르침을 펴시었습니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을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 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 그리고 너희들은 내 가르침을 중심으로 서로 화합하고 공경하며 다투지 말아야 한다. 물과 젖처럼 화합할 것이요, 물위에 기름처럼 겉돌지 말아야 한다. 함께 내 교법(敎法)을 지키고 함께 배우며 함께 수행하고 부지런히 힘써 깨달음의 기쁨을 함께 누려라. 나는 몸소 진리를 깨닫고 너희들을 위해 진리를 말하였다. 너희는 이 진리를 지켜 무슨 일이든지 진리대로 행동하여라. 이 가르침대로 행동한다면 설사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그는 항상 내 곁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내가 간 후에는 내가 말한 가르침이 곧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나는 이제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법을 다 갖추었으니 만일 더 오래 머무른다 해도 이 이상 이익 될 바가 없을 것이다. 마땅히 제도할 사람은 이미 다 제도했으며 아직 제도 받지 못한 이가 있더라도 득도의 인연을 모두 지었다. 이제부터 나의 모든 제자들은 정법을 서로 전하고 이어 받으며, 여래의 법신(法身)이 상주하여 항상 사라지지 않게 하라.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부처님은 평안히 열반에 드셨습니다. 진리를 찾아 왕자의 자리도 박차고 출가하여 견디기 어려운 고행 끝에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 사십오년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설하여 몸소 자비를 구현한 부처님은 이와 같이 열반에 드셨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자 성자이신 부처님은 팔십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가셨지만 그 가르침은 어두운 밤길에 등불처럼 우리 중생의 앞길을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