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정 예하 동안거 결제법어】“결제 기간 동안 화두를 투관하라”
옛날 어느 노보살이 정진을 열심히 해 장래가 촉망되는 스님에게 초암(草庵)을 지어주고 20년 간 시봉을 잘 했습니다. 어느 날 노보살은 스님의 공부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 시험하기 위해 예쁘게 단장한 딸을 초암에 들도록 했습니다. 딸은 스님에게 상(床)을 잘 차려 공양하게 하면서 무릎 위에 올라앉아 “지금 어떠합니까?”고 물었습니다. 이에 스님은 “고목한암(枯木寒岩) 냉난부지(冷煖不知)라. 너는 마른나무 가지이요 난 찬 바위라 찬지 더운지를 모르겠다.”하였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노보살은 “내가 사기꾼 도둑인 줄 모르고 20년이나 시봉하다니 잘못됐다.”며 스님을 쫓아내고 암자를 불태워버렸습니다.
파소암(婆燒庵)이라는 공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스님은 무엇이라 대꾸하고 어떻게 처신했어야 쫓겨나지 않았을 것이며, 노보살은 암자를 불태우지 않았을까 일러주는 화두입니다.
만법(萬法)은 모두 마음에 의지하여 세워집니다. 경계를 만나면 마음이 있고 경계가 없으면 마음도 없습니다. 깨끗한 자성 위에 도리어 경계를 드러냄으로써 견해를 만들면 그릇된 것입니다.
수행인은 무릇 이러한 경계를 타파해야만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수행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자기를 놓치지 않고 자기를 관조하는 회광반조(回光返照)의 정진이 중요합니다.
한국불교는 예로부터 삼동결제를 아주 중요하게 여겨 왔습니다. 역대 선조사들은 모두 이러한 결제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고 후학들에게도 그 지남(指南)을 남기셨습니다. 특히 더운 여름 우기(雨期)가 계속되는 인도와 달리 추운 겨울이 있는 우리나라 계절의 특성상 한국불교는 동안거가 만들어졌고 이 기간에 산내암자 스님들도 본사에 함께 모여 참선, 염불, 간경 등 소향대로 정진해 왔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종단은 사설암자에서 혼자 수행하는 종도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혼자라는 경계마저 무너뜨리고 올바른 심지(心地)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야말로 더욱 중요한 본분사라 하겠습니다. 안거는 흐트러진 마음과 행을 돈독히 하고 수행인으로서의 본분을 지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참선에 주력하는 일뿐 아니라 염불, 간경, 기도하시는 분들도 결제 기간 동안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용맹정진한다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파소암’의 공안처럼 화두를 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 수행방법입니다. 결제 기간 동안 화두(공안)를 투관(透關)하겠다는 확실한 신념과 깨달을 수 있다는 원력을 세운다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입니다.
구구(久久)하면 필유입처(必有入處)라. 오래하면 반드시 열리게 됩니다.
내가 든 화두를 놓지 말고, 혹여 놓았다 하면 다시 들어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길 당부드립니다.
불기 2568(2024)년 11월 15일(음 10.15.)
한국불교태고종 종정 운경
출처 : 한국불교신문(http://www.kbulgy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