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는 본래 모두 통해 있다”
태고종 지허 종정예하 경자년 동안거 해제법어
(법상에 올라 良久한 뒤, 주장자로 법좌를 한번 치고)
山色水流諸佛現(산색수류제불현)
門外倕是悟無生(문외수시오무생)
산빛에 물 흘러 모든 부처 나타나니
문밖에 그 누가 생명 없음을 아는가?
〔할(喝)을 한 번 하고〕
오늘이 해제라 하니 어떤 해제인가.
한겨울 90일을 두고 빠르다 하면 사견망상(邪見妄想)과 수면마(睡眠魔)를 취모리(吹毛利) 한 칼에 쳐버리고 화두일념으로 백척간두에 우뚝 선 천하대장군 수행자요, 느리다 하면 천지가 개었다 흐렸다 하다가 미륵하생(彌勒下生)에도 조사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끝없는 생사고해를 마지못해 따라가는, 이름만 수행자라 할 것이다. 정점을 향해 활을 떠난 화살이 해제와 결제가 어디따로 있으리오마는 그저 이름만이 분별할 뿐이다. 그렇기에 옛 인도의 싯달타 청년 왕자는 만고의 부유만덕 속에 생로병사의 현상을 한 번 보고 할애(割愛) 출가하니 6년 고행에서 유아독존의 부처를 이루었고 옛 중국의 남악회양(南岳懷讓, 677~744)은 육조(六祖)의 한마디 말에 8년을 추구하다 확연대오하여 육조의 법맥을 이었다. 이를 누가 모르며 삼세의 모든 부처와 역대 전등의 조사가풍을 누가 모르겠는가. 대지에 뿌리를 뻗고 자라난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은 오직 그 나무 일이라 할 것이다. 또한 무심히 지나는 바람결과 그 바람을 따라가는 흰 구름이 스치는 바위는 요지부동이거니 짚신 한 짝 지팡이에 메고 총령 고개를 넘는 달마 대사를 알아차린 늙은 바위가 대중을 향해 노래 한 곡 부르겠다 한다.
木鷄鳴子夜(목계명자야)
芻狗吠天明(추구폐천명)
陰陽不到處(음양부도처)
一片好風光(일편호풍광)
나무 닭 한밤중에 울고
짚으로 만든 개 하늘 밝다 짖으니
그늘도 볕도 이를 수 없는 곳
한 조각 경치 더없이 좋네
대중들이여. 이 노래 알겠는가 모르겠는가. 알아도 차 한 잔하고 몰라도 차 한 잔 하라. 조주(趙州) 스님이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부처님 있는 곳에 머물지 말고 부처님 없는 곳에서 급히 달아나라. 삼천리 밖에서 사람을 만나더라도 잘못을 일으켜 세우지 마라”고 하니, 어떤 수행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가지 않겠습니다.” 이에 조주 선사가 “적양화(摘楊花)여, 적양화여!” 하였다. 적양화는 버들꽃을 땄다는 말이다. 수행자가 나가지 않겠다는 말에 조주 선사가 “버들꽃을 땄구나” 했는데 이 무슨 도리일까. 조주 선사가 열반한 백여 년 뒤에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 선사가 이와 같이 송(頌)하였다.
有佛處不得住(유불처부득주)하니
生鐵秤錘蟲蛙(생철칭추충와)요
無佛處急走過(무불처급주과)하니
撞着嵩山破竈墮(당착숭산파조타)로다.
三千里外莫錯擧(삼천리외막착거)라 하니
兩箇石人相耳語(양개석인상이어)로다.
伊麽則不去也(이마즉불거야)라 하니
此語己行徧天下(차어기행편천하)로다.
摘楊花摘楊花(적양화 적양화)
부처님 있는 곳 머물지 말라 하니
무쇠 저울추에 벌레와 개구리가 살아나고
부처님 없는 곳 급히 달아나라 하니
숭산에서 파조타를 만나게 되는구나.
삼천리 밖에 잘못 드러내지 말라 하니
돌사람 둘이 서로 귓속말하는구나.
가지 않겠다 한즉, 이 무엇이냐
이 말이 천하를 덮어버림이로다.
“버들꽃을 땄구나, 버들꽃을 땄구나”라 하였다.
이 운문문언 선사의 송(頌) 끝 부분에 숭산파조타(嵩山破竈墮)라는 구절이 있다. 숭산은 중국의 산 이름이고 파조타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노안(老安) 파조타(破竈墮) 화상을 말한다. ‘노안’은 선사의 법호이고 ‘파조타’는 조왕단(竈王壇)을 때려 부쉈다는 뜻이다.
숭산 부근의 숭악(嵩岳)에 사당이 하나 있었고 그 사당 안에 조왕단이 있었다. 이 조왕단에 공을 드리면 곧 영험이 나타나서 바라던 소원이 놀랄 만한 결과로 성취되곤 했다. 어느 날 노안 화상이 대중을 데리고 그 사당을 찾아갔다. 화상이 주장으로 조왕단을 세 번 때리고 크게 돌(咄)한 후에 말씀하셨다. “조왕단은 진흙과 기왓장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성스러움은 어디 있고 영은 어디서 생기는 것이기에 성령(聖靈)으로 삼느냐” 하면서 다시 주장자를 들어 세 번 치자 조왕단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그 자리에 푸른 옷을 입고 높은 관을 쓴 노인이 나타나 노안 화상에게 큰절을 올리었다. 노안 화상이 “너는 누구냐” 하니 그 푸른 옷 입은 형상이 “나는 본래 이 사당의 조왕대신으로 오랫동안 한마음으로 견성의 길을 가지 못한 업보를 받아오다가 오늘 큰스님께서 무생법문(無生法問)을 들려주셔서 홀연히 깨달아 이곳을 벗어나 천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큰스님께서 내려 주신 법문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노안 화상이 “이는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성품을 가르쳤을 뿐 내가 말을 이른 것이 아니다”라고 이르자 조왕대신은 합장으로 세 번 절하고 사라졌다. 이와 같이 조왕대신을 성불의 길로 제도하였으므로 후세까지 파조타 화상으로 알려져 있다.
대중들은 이 얘기의 뜻을 알겠는가.
(주장자를 들어 법상을 세 번 치고)
此道從来貫萬事(차도종래관만사)
靜觀無物不歸空(정관무물불귀공)
雖然失脚蹉毫未(수연실각차호미)
異見紛紜各不同(이견분운각부동)
이 도는 본래 모든 일에 통하여 꿰어 있다
고요히 관찰하면 물질이 없이 빈 곳으로 돌아가네
그러나 실각하여 털끝만치라도 어긋나면
견해가 달라 각각 어지럽고 같을 수가 없다네.
(법상에서 내려오다.)
불기 2565(2021). 2. 26.(음. 1. 15.)
한국불교태고종 종정 지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