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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락 누리시고 소요자재 하시라”

한국불교태고종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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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원장 호명 스님이 원호당 형민 대종사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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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사를 하고 있는 장의위원장 현중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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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는 만장과 원호당 형민 대종사 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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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원장 호명 스님을 중심으로 스님들과 유족대표가 거화를 하기 위해 봉에 불을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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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화를 마치자 거센 불길이 화염을 일으키며 타오르고 있다.

 

원호당(圓湖堂) 형민(馨敏) 대종사 영결식이 4월 19일 오전 9시 양평 광명사에서 한국불교태고종 경기동부교구 종무원장(宗務院葬)으로 엄수됐다. 


이날 영결식은 총무원장 호명 스님과 총무원 재경부원장 능해 스님을 비롯해 경기동부교구 스님들과 형민 대종사 문도들,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동방불교대학 교학처장 철오 스님의 사회로 진행됐다.

장의위원장 현중 스님(경기동부교구 종무원장)은 영결사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온화하시고 인자하신 미소로 저희들을 맞아주시던 스님께서 원적에 드시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면서 “아직도 우리 경기동부교구 종무원은 마쳐야 할 불사가 산더미같이 많사온데 어찌 먼저 떠나셨느냐”고 애도했다. 현중 스님은 “비록 세연이 다 하시어 오늘 이렇게 떠나가시지만 화신(化身)을 다시 나투시어 저희들 곁에 돌아오시라”고 말했다.

총무원장 호명 스님은 추도사에서 “불법 가운데 생사(生死)가 따로 없고 거래(去來) 또한 둘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렇게 홀연히 떠나가시니 스님을 애도하는 마음을 그칠 수 없다”면서 “돌이켜보면 스님께서는 교구와 종단을 위한 서원과 원력으로 영일(寧日)이 없으셨다”고 회고했다. 호명 스님은 또 “종단이 어려울 때마다 종단 발전을 위한 길에 발벗고 나서 부종수교의 원력을 몸소 보이셨다”면서 “부디 안양국에 왕생하시어 무상락을 누리시고 소요자재하시기를 바란다”고 추도했다.

총무원 재경부원장 능해 스님은 조사에서 “스님 자신보다도 종단과 교구를 먼저 생각하시고 대도의 크신 삶을 사시며 평생을 삼보호지와 가람수호에 심혈을 기울이셨다”면서 “이제 사바세계의 고단함을 접으시고 적정의 세계에서 무상락을 누리시라”고 말했다.

경기동부교구 전 종무원장 도인 스님도 조사에서 “스님께서는 출가 이래 평생을 포교에 바치셨으며 종단과 교구의 발전에 고단함을 쉬지 않으셨다”면서 “휠체어에 법체를 의지하면서도 쩌렁쩌렁한 사자후를 멈추지 않으신 스님의 원력은 후학들의 마음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각계 인사 조사가 끝난 후 총무원장 호명 스님을 선두로 영전에 헌화와 분향을 마친 참석 대중들은 문도대표와 가족대표의 인사말을 들은 후 사홍서원을 끝으로 영결식을 마쳤다.

이어 광명사 도량에 마련된 다비장에 원호당 형민 대종사의 법구가 안치되자 총무원장 호명 스님을 중심으로 문도들과 가족들이 불법승 신호에 따라 “스님, 불 들어갑니다”라며 거화(擧火) 의식을 가졌다. 불은 연기를 뿜어내며 착화됐고 수분 후 붉은 불꽃이 타오르는 가운데 집전 스님들의 아미타불 염송이 다비장에 크게 울려 퍼졌다.

원호당 형민 대종사는 1968년 경찰대학교 제12기로 졸업해 청와대 경호실과 동대문경찰서에서 근무하다 1985년 춘봉 스님을 은사로 봉서사에서 득도했다. 1995년 대덕 법계를, 2002년 종사 법계를 품수했다. 1989년부터 1994년,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송암사 주지를 역임했다. 또한 태고종 경기동부교구 제4대 종무원장과 제10대 종무원장을 역임하며 종단과 교구발전에 이바지했다.

스님은 지난 4월 17일 주석처인 송암사에서 세납 81세 승납 34세로 원적했다. 열반송으로 “팔십년 꿈 속에서 헤맨 이 몸이여/동서로 얼마나 달렸는가/오늘 뜬 구름 같은 육신과 이별하니/부드러운 솔바람이 붉은 노을을 보내는구나”(八十餘年蒙裏身 東走西走走無限 今朝永別浮虛體 細細松風送紫霞)를 남겼다.

양평 광명사=김종만 기자


출처 : 한국불교신문(http://www.kbulgy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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